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대학교 시험의 '족보' 문화에 관한 일화
    내 생각 2022. 7. 24. 22:18

     

    군 전역후 대학에 복학하고 대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중에 동기인 친구가 

     

    "다음 경찰학 시험에 나올 문제"라며 종이 한장을 건내주었다.

     

    나는 "이 문제가 다음에 나올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친구는 "그 교수님은 2년마다 문제를 번갈아가며 내신다. 이게 2년전 문제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만해도 그 문제가 정말로 시험에 나올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학교 시험이라 하더라도 경찰학과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시험문제를 그렇게 내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찰학 시험 당일, 나는 그 문제가 그대로 출제된 것을 확인했다(주관식 시험이었다). 

     

    나는 시험문제를 2년마다 번갈아가며 내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생각이 옳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상대는 교수였고 나는 일개 대학생이었다. 또 경찰학과 특성상 교수의 권위가 강했고 교수의 권위에 대항하면 학과에서 외톨이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시험이 불공정하다고 시험지에 적었고, 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시험지에 적었다. 

     

    그리고 나는 시험문제를 미리 보았으므로 시험지는 사실상 백지로 제출하겠다고 적었다.

     

    나는 내가 만약 그 시험문제를 미리 보지 않았고 시험 당일에 받아봤다면 그 문제를 절대 풀지못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지에 답을 적지 않았다. 사실 친구에게 문제를 미리 받아봤을때 그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시험 당일 문제를 받아 봤을때 내가 마음먹고 답을 적으려 했어도 아마 제대로 된 답은 적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나는 시험이 불공정하다고 교수에게 항의를 하게 되었다.

     

     

     

     

     

    다음 경찰학 시간, 교수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내 점수는 당연히 F였지만,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시험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라"

     

     

    나는 아직까지 이 교수가 말했던 그 "시험"이 무엇인지 이해 못한다.

     

    그때는 내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멈추고 내가 잘못됐을수도 있으니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때의 내가 옳았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시험은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시험은 모든 학생에게 공정해야한다. 하지만 2년마다 문제를 번갈아 내는것은 특정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바로 '2년 전 그 수업을 들었던 선배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편입생일수도 있고, 복학생일수도 있고 혹은 학과에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도 있다. 이들은 2년전 선배들에게 부탁해서 2년전 문제를 받아볼 능력이 없다. 애초에 2년전 문제가 다시 출제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2년마다 문제를 번갈아가며 내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선후배 문화"를 악화시킨다. 선배가 후배에대해 권위를 가지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야 하는 것, 그게 "선후배 문화"다. 2년마다 문제를 번갈아 내는 것은 이 '선배'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다. 

     

    선배들에게 아부 잘하고 아양 잘 떠는 후배들에게 선배들은 시험문제를 제공하여 보상할 수 있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않는 후배들에게는 시험문제를 주지않음으로써 보복할수도 있다. 선배에게 아부 잘하는 후배들은 높은 점수를 받을것이고 권위에 도전하는 후배들은 낮은 점수를 받을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런식으로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그 교수가 내 얘기를 수업시간에 꺼내는 것을 보면서도 항의하지 못했다(그 교수도 양심이 있었는지 내 실명을 공개하진 않았다). 내가 특정되고 공개적으로 내가 공격당한 것은 아니지만, 수업시간에 익명의 내가 언급되고 악마화 되는것을 보는것은 기분 좋은일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같은 학과 학생들 역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개념없이 어른에게 대드는 놈 취급했다. 물론 그 학생들 모두 나와 아는 사이였다. 경찰학과 특성상 선후배 관계는 권위적이었고 나를 보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후배들도 그자리에 있었고, 나와 친한 동기들도 그자리에 있었다. 그들 모두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몰랐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욕했다. 나는 표면적으로는 그들과 친한 관계 혹은 권위적인 선배였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는 악마였다.

     

     

    이후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했고 그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모두 존경할만한 분들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그들의 권위에 도전해보라고 하셨고, 철학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지금의 내가 내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 하고 내 자신의 생각이 논리적인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은 이런 경험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내가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고 다시는 내가 옳은 경우 내 의견을 굽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내 의견이 옳은지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Designed by Tistory.